제가 오늘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예측 가능한 비합리성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비합리적 행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수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습니다. 제가 아주 심한 화상을 입었을 때였죠.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많은 유형의 비합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화상외과에서 제가 특히 괴로웠던 건 간호사들이 제 몸의 붕대를 떼내는 과정이었어요. 여러분 모두 한번쯤은 밴드를 떼어본 적 있으실텐데 어떤 방법이 맞는지 고민해보셨을 겁니다. 빨리 뜯어버릴까 - 짧지만 세게 - 아니면 밴드를 천천히 뜯을까 - 시간은 걸리지만 매 순간은 덜 아프죠. 둘 중 어떤 게 맞는 방법일까요? 제 담당 간호사들은 올바른 방법이 빨리 뜯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반창고를 잡고 바로 뜯어내고 또 잡아서는 바로 뜯어냈습니다. 당시 제 몸의 70%가 화상을 입은 상태여서 전부 떼내려면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도 상상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짧고 세게 반창고를 뜯는 그 순간이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들께 합리적으로 얘길했죠. "좀 다른 방법으로 해보면 어때요? 시간을 조금 더 들여서 - 한 시간 대신 두 시간 정도 - 더 살살 떼내주시면 어떨까요?" 그러자 간호사들이 제게 두 가지를 얘기해줬습니다. 그분들은 저 같은 환자 모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고 즉, 제 고통을 최소화하는 옳은 방법을 알고 있단 거였죠. 그리고 또 환자라는 단어에는 제안하거나 방해한다는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유대어의 뜻만 그런 건 아니죠. (이스라엘에 있는 병원이었음) 제가 들어 본 모든 언어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죠. 간호사들은 원래 하던 방식대로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3년 정도 지나서 저는 퇴원을 하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제가 들은 가장 재미있는 강의 중 하나가 실험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질문에 대한 일종의 복제품을 만들어서 일종의 추상적인 방법으로요, 그리고 그에 대해 살펴본다는 겁니다. 세상의 이치에 대해 무언가 깨달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도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화상환자의 반창고를 떼내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돈이 별로 없어서 공구점에 가서 목수들이 쓰는 바이스(공작용 고정장치)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실험실로 데려와서 바이스에 손가락을 넣게 하고 조금씩 조이는 거죠. (웃음) 그리고 오래 조이거나 잠깐 조이기도 하고 올리면서 아프게 하고 내리면서 아프게 하고 중간에 쉬기도 하고 안 쉬기도 하면서 고통의 모든 버전을 느끼게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약간씩의 고통을 주고 나서는 질문을 했죠. 이건 얼마나 아팠어요? 또 이러면 얼마나 아팠어요? 또는 마지막 두 방법 중 선택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아프시겠습니까? (웃음) 이 실험을 한동안 계속했습니다. (웃음) 그러다가 모든 훌륭한 연구 프로젝트가 그렇듯 저도 지원금을 더 받았죠. 그래서 음향, 전기충격 등으로 영역을 옮겼습니다. 심지어 고통을 더 느낄 수 있는 고통실험복까지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과정을 마치고 제가 알게 된 건 간호사들이 틀렸다는 겁니다. 훌륭하고 좋은 의도를 가진 분들이었고 경험도 풍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 가능하게 항상 일을 잘못하고 있었던 거죠. 결론을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속성을 인지할 때는 강도를 인지할 때와 다른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만일 지속시간이 더 길어지고 강도가 줄어들었다면 제가 덜 아팠을 겁니다. 실제로 더 좋은 방법은 제 얼굴부터 시작해서 왜냐면 얼굴쪽이 훨씬 아프니까요, 그리고 다리 쪽으로 내려가면 저는 점점 고통이 줄어드는 걸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덜 아팠을 겁니다. 그리고 또 더 나은 방법은 중간에 좀 쉬면서 고통에서 회복하도록 해 주는 겁니다. 이 모든 게 좋은 방법이었지만 제 간호사들은 전혀 몰랐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생각했죠. 세상에서 간호사들만 틀린걸까 이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아니면 이게 보다 일반적인 현상인가? 결과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거죠. 그럼 이와 같은 비합리성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또 남을 속이는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죠. 부정행위를 고른 이유는 그게 흥미롭기도 하고 또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어섭니다. 현재의 주식시장 상황에 대해서요. 제가 부정행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엔론 사태가 갑자기 터진 때였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생각하게 된 거죠. 이 경우에 소수의 나쁜 사람이 있어서 부정행위가 생긴건지 아니면 좀 더 부정이 만연한 환경이어서 다수가 실제로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늘 하듯이 단순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설명드리죠. 만일 여러분이 실험에 참여했다면 저는 여러분께 종이 한 장을 주고 여기에는 누구나 풀 수 있는 산수문제 20개가 적혀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충분히 주지는 않죠. 5분이 지나면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답안지를 주세요. 답변당 1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실험에 따랐고 저는 4달러씩을 줬습니다. 평균적으로 네 문제 정도를 풀었거든요.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정행위를 유도합니다. 이들에게도 시험지를 나누어주고 5분이 지나면 이렇게 말하는거죠. "시험지를 찢어버리세요. 찢은 종이를 주머니나 베낭에 넣고 몇 개나 맞췄는지 제게 말해주세요"라고요. 그러자 평균 일곱 문제를 맞췄습니다. 이걸 보면 소수의 나쁜 사람이 있어서 이 소수의 사람들이 자주 속이는 게 아닙니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약간씩 속이는 거죠. 경제이론의 관점에서 부정행위는 아주 단순한 비용-편익 분석에 해당합니다. 들킬 가능성이 얼마인가? 속여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얼마인가? 만일 들키면 얼마나 심한 처벌을 받을 것인가? 이 옵션들을 따져보는 거죠. 간단한 비용-편익 분석을 하고 부정행위를 저지를지 말지 결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룹별로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금액을 달리해 봤습니다. 다시 말해 훔칠 수 있는 금액을 조절한거죠. 정답 하나당 10센트, 50센트, 1달러, 5달러, 10달러씩 주면서 살펴봤습니다. 일반적인 예상으로는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커질수록 사람들이 많이 속일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훔치는 부정행위가 나타난거죠. 들킬 가능성을 달리 해보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들은 종이의 반만 찢어서 증거를 일부 남기도록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이를 전부 찢어버리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이를 다 찢어버리고 방을 나가서 백달러 이상 담긴 통에서 직접 돈을 집어가도록 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들킬 가능성이 줄어들수록 더 많이 속일거라고 하겠지만 역시 결과는 달랐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약간씩만 속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경제적 인센티브에는 둔감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됐죠. "만일 사람들이 경제적 합리성의 이론에 둔감하고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가?" 그래서 저희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하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 대해 좋게 느끼고 싶어하니까 속이고 싶지 않은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약간은 속일 수 있고 그래도 여전히 본인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부정행위의 어떤 선이 있고 약간 속이면서 여전히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그 한계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지 않을 정도라는 거죠. 저희는 이걸 개인적인 오차범위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개인적 오차범위를 어떻게 테스트할 수 있을까요? 먼저 개인적 오차범위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실험실로 오게해서 "여러분이 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절반의 인원에게는 고등학교 때 읽은 책 열 권을 기억해 내거나 아니면 십계명을 외워보라고 하고 부정행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결과는 십계명을 외워보려고 한 사람들은 -실험 대상자 중에는 다 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어쨌던 십계명을 외우려고 시도한 사람들의 경우 부정행위를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전혀 속이지 않았습니다. 보다 독실한 신자일수록 십계명을 더 많이 기억한 사람일수록 덜 속이고 덜 독실한 사람들 십계명을 거의 기억 못한 사람들이 더 속인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십계명을 생각해내기 시작한 순간 부정행위를 멈춘거죠. 심지어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고 맹세하도록 한 다음 부정행위를 유도했을 때도 아무도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은 아무래도 교육시스템에 적용하기는 어려워서 대신 "사람들에게 명예 서약을 시키면 어떨까?" 얘길했죠. 그래서 사람들이 서약을 하도록 했습니다. "본인은 이 간략한 설문에서 MIT 명예서약을 지킬 것을 약속함" 그런 다음 서약서를 찢어버리게 했죠. 그래도 부정행위는 없었습니다. 이 결과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MIT에는 명예서약이란 게 없다는 거죠. (웃음) 그래서 이런 식으로 오차범위를 줄여봤습니다. 오차범위를 늘리면 어떨까요? 첫번째 실험은 MIT 캠퍼스를 다니면서 6개짜리 콜라팩을 냉장고에 채워넣었습니다. 학부생들이 사용하는 보통 냉장고였어요. 그런 다음 다시 가서 저희가 전문용어로 콜라의 절반수명이라고 부르는 시간을 측정했죠. 즉, 냉장고에 얼마동안 남아있느냐? 예상하시겠지만 별로 오래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져가는거죠. 반대로 이번에는 1달러 지폐 6장을 담은 접시를 같은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지폐는 한 장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좋은 사회과학 실험이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제대로 실험을 하기 위해 앞서 말씀드린 방법을 썼습니다. 종이를 나눠 준 사람들 중 1/3은 다시 돌려주도록 하고 또 다른 1/3은 찢어버리게 하고 우리에게 와서 말하게 했죠. "전 문제를 X개 풀었습니다. X달러 주세요"라고요. 나머지 1/3은 종이를 찢어버린 후에 우리에게 와서 "전 문제를 X개 풀었습니다. 토큰 X개 주세요"라고 말하도록 했습니다. 직접 돈을 주지 않고 다른 걸 준 거죠. 그리고 이 사람들이 12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 토큰을 가져가서 돈으로 교환하게 했습니다. 여러분의 직관력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세요. 사무실에서 연필을 하나 집으로 가져갔을 때 더 죄의식이 들까요 아니면 잔돈 박스에서 10센트 가져갔을 때 더 죄스러울까요? 각각의 경우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현금에서 한 단계 잠시라도 거리를 두게하고 토큰으로 우선 지급하면 결과가 달라질까요? 제 실험대상들의 경우 부정행위가 두 배로 늘더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그리고 주식시장에 대해 잠시 후 말씀드리죠. 하지만 이 실험으로도 엔론사태에 대한 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엔론에는 사회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거든요. 사람들이 서로의 행위를 보게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게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그래서 또 다른 실험을 해봤습니다. 많은 학생들을 실험에 참여시키고 미리 돈을 지급했습니다. 모두에게 실험에 참석하는 대가를 전액 봉투에 담아 지급했죠.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벌지 않은 금액은 돌려달라고 말이죠.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에게 속일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이들은 속입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결국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연기자를 하나 고용해서 이 학생이 30초 후에 일어서서 말을 하도록 시켰습니다. "문제 다 풀었는데요. 이제 뭐하죠?"라구요. 그러면 실험자가 "다 풀었으면 가도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말만 하면 그걸로 끝인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연기하는 학생을 그룹에 포함시켰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학생이 연기자인 줄 모르죠. 그리고 연기자들은 아주 심각하게 부정행위를 저지릅니다. 그룹의 다른 학생들은 어떨까요? 더 많이 속일까요 아니면 덜 속일까요? 결과는 이랬습니다. 어떤 운동복셔츠를 입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겁니다. 설명을 드리죠. 이 실험을 카네기멜론과 피츠버그 대학에서 했습니다. 피츠버그에는 두 개의 큰 대학이 있죠. 바로 카네기멜론과 피츠버그 대학교입니다. 실험에 참석하는 모든 학생은 카네기멜론 학생이었죠. 5초 후 일어나는 연기자가 카네기멜론 학생이면 -실제로 카네기멜론 학생이었는데요- 즉, 그들 그룹의 일원이면 부정행위가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학생이 피츠버그대학 셔츠를 입고 있으면 부정행위가 줄어들었죠. (웃음) 이건 중요한 사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연기자가 일어났을 때 모두에게 속여도 들키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 준 겁니다. 왜냐면 실험담당자가 "다 끝냈으면 가세요"라고 했고 이들은 돈을 그냥 가져갔으니까요. 역시 이번에도 들킬 가능성은 큰 변수가 아니었습니다. 부정행위의 기준이 중요했던거죠. 만일 우리 그룹의 누군가가 부정행위를 하고 우리가 이걸 본다면 우리는 전체 그룹으로서 이렇게 행동하는게 더 적합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만일 그 사람이 다른 그룹이라면 이 나쁜 사람들 -이 일에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엮이고 싶지 않은 나쁜 사람들이 다른 대학교,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라면, 갑자기 사람들의 정직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십계명 실험과 약간 비슷하죠. 그리고 부정행위도 덜 합니다. 이 실험을 통해 부정행위에 대해 뭘 알게됐나요? 많은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들 아주 조금만 속이는 거죠. 사람들에게 도덕성에 대해 인지시키면 부정행위가 줄어듭니다. 부정행위로부터 거리감을 느낄수록 가령 돈과 같은 대상과 거리가 멀수록 부정행위가 늘어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변에서 부정행위를 봤을 때 특히 우리 그룹 내에서 봤을 때 부정행위는 많아집니다. 이 현상을 주식시장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시죠. 만일 여러분이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현실을 약간 왜곡해서 보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이 왜곡해서 보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게 봅니다. 만일 조금 다른 방법을 쓴다면 가령 돈으로 부터 거리를 둔다면요? 주식, 스톡옵션, 파생상품, 주택저당증권(MBS) 같은 이름을 붙인다면 이렇게 돈과 좀 더 거리를 두면 이건 일초 후에 돈으로 바꾸는 토큰이 아니라 여러 단계 돈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겁니다. 시간도 훨씬 길죠 - 그렇다면 사람들이 더 많이 속일까요? 그리고 또 사회적 환경에서 주변 사람들의 행위를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 모든 영향력이 아주 부정적으로 주식시장에서 작용한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좀 더 일반적인 주제로 행동경제학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살면서 많은 직관을 느끼게 되는데 중요한 건 이들 중 상당수가 틀리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직관들을 우리가 테스트해 볼거냐 하는거죠. 이 직관을 어떻게 테스트할지 생각해보죠. 개인적 생활이나 직업에서 그리고 특히 정책과 관련해서는 학생낙오방지(NCLB) 같은 정책이나 새로운 주식시장이 생길 때, 또 다른 정책을 만들 때 과세, 보건 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직관을 테스트하기 힘들다는 게 제가 깨달은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제 간호사들은 만나러 갔을 때였죠. 저는 제가 입원했던 병원에 가서 간호사분들께 붕대 떼는 방법에 관한 실험 결과를 알려줬죠. 그리고 두 가지 흥미로운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에티 간호사가 알려준 건데요 제가 그녀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녀는 "물론 너도 정말 아팠겠지만 간호사로서의 내 입장도 생각해봐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붕대를 떼내는데 그것도 반복적으로 아주 오랬동안 해야되는 상황을 말야. 그런 큰 고통을 일으키는 건 나로서도 괴로운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분이 한 말이, 그녀로서 그 일이 어려웠던 이유일지도 모르는데 저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말이었어요. 그 분 얘기가 "나는 네 직관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직관이 맞다고 생각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모든 직관을 생각해보시면 본인의 직관이 틀렸다고는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은, 자기의 직관이 맞았다고 전제할 때 그녀는 본인의 직관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려운 실험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본인이 틀렸는지 확인해보기 어려웠다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항상 처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아주 강력한 직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 경제 현상, 교사 급여 등에 대해서요. 하지만 이런 우리의 직관을 테스트해보기 전까지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제 삶이 얼마나 좋아졌을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간호사들이 본인의 직관을 테스트해보려 했다면 말이죠. 모든 것이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직관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실험을 시작한다면 말이죠.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