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조세프 나카마르도 입니다. 저는 샌디에고 주립대학교에서 행정과 부책임자로서 그리고 철학과 교수로서 재직 중입니다. 저는 장애와 생명윤리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저는 또한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척추에 장애가 있습니다. 그리고 왜소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키는 다른 사람의 절반 밖에는 안됩니다. 제가 겪은 최초의 차별은 말하기가 어려운데 낙인이나 지독한 편견의 경험을 그리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제 왜소한 키때문에 일이 있었으나 아시다시피 저는 어렸을 때 아이들이 농담하고 놀리는 대상이 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이기에 했던 일인 것은 압니다. 그 뒤에는 조금 더 시스템적인 차별도 경험을 했는데 제가 원하는 모임에서 제가 배척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좋은 경험도 있었습니다. 제가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저희 부모님께서 노력해주신 덕에 한 좋은 경험들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보이스카웃 활동을 하고 유년단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한테 해주신게 정말 많았는데 제가 장애가 있어도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저랑 같이 캠프 여행을 가주시고 저를 많이 돌봐주시면서 여러 활동에 참여하게 해주셨고 사람들과 함께 멀리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참 많은 일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첫 번째 차별의 경험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였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 공립학교를 갔는데 8학년이 아직 되지 않았을 때 제가 고등학교로 진학하려고 했을 때 저는 처음에는 제 형이 다니던 종교와 관련된 사립학교에 진학하기로 되어 있었고 입학 시험을 쳤습니다. 장학금도 받게 되었고 모든게 잘 되고 있는데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저는 모터가 달린 스쿠터를 타야했습니다.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은 ADA가 통과된 이후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종교와 관련된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가 법적으로 ADA의 요구사항을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법의 영향력에 대해서 평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위해서 학교에서 시설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제 도시에 있는 공립학교로 갔습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당시에 저는 상당히 행복했습니다. 제 친구들이랑 모두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뭔가를 배울 수는 있었습니다. 모든 게 가능하지는 않다라는 점이요. 모든 게 저를 위해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거요. 이런 일은 제가 제 삶에서 계속 일어났습니다. ADA를 기억하는 한에서 그리고 제가 살아온 삶에서, 이런 일들은 일어났고 ADA가 통과되었을 때 저는 상당히 어렸습니다. 저는 ADA 세대라고 불립니다. 이 말의 뜻은 제가 1982년에 태어나서 주로 ADA라는 법이 만들어놓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ADA가 통과되었을 때 저는 8살, 9살이었습니다. 저한테는 그 시기에 분명히 ADA를 깨달았던 극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법안이 통과된 순간이 있었겠죠. 그렇지만 당시에 정확히 제가 뭘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에서 저한테 설명해 주셨을 때 그 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사립 가톨릭 학교에 있었을 때,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었고 차별을 경헙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다른 공립학교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ADA 덕분에 제가 다른 공립 학교들에 입학할 수가 있다고도 말씀해주셨지요. 이미 ADA라는 법이 있고 그 법 덕분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당시 제가 사용했던 모터 스쿠터를 타도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요. 그 때 처음 ADA라는 법을 인식했었고, 차별이라는게 뭔지 그 때 처음 배웠습니다. 참 멋진 경험이지 않나요? 맞죠? "좋아, 이런 종류의 차별이 사회에 있고 내가 이따금 비슷한 차별을 경험할 지도 몰라. 이런 것들로 내가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뭔가를 해야 하네."를 배웠으니까요. 이 경험 덕분에 저는 저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ADA가 제 삶에서 차이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에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법은 대중 교통부터 지역사회에서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회를 망라한 놀랍도록 중요한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주거시설에 관한 결정 또한 ADA에 근거해서 내려진 것이고 장애인들이 장기간 도움을 받아야 할 때 최소한의 제약만을 받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하고, 장애인을 함부로 기관에 가두어 놓거나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또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ADA가 그 밖에 한 일은 또 뭐가 있을까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해준 거,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도 있겠네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ADA가 입안되기 전 장애인들의 삶은 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상상은 해볼 수 있으나 그걸 직접 경험하고 싶지는 않아요. ADA는 개인의 경험에서 대단한 변화를 만들어 냈고, 장애인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대단한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저는 ADA 덕에 두 아이와 함께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ADA 이전에 그렇게 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들을 키우자면 여러 공적인 공간들에 방문을 해야 하고 제가 할 수가 '없는'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제가 일상에서 어떤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원에 가거나 식료품점에 갈 때, 할인 중인 상품을 꼭 사야만할 때, 데이케어 센터를 열려고 할 때 등등. 휠체어를 타는 저에게 ADA 덕분에 이런 일들이 다 가능했고 최근 제 삶에서 큰 영향을 준 개인적 사건들이 다 가능했습니다. 전문적인 면에서 ADA와 그 영향력 또는 ADA가 미진 했던 부분들을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신체적 장애인으로서 제가 받는 특례입니다. 장애에도 등급이 있는데요, 신체적 장애는 가장 심한 장애 중 하나이고 그보다 덜 심한 장애로는 정신 장애와 지적 발달 장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고, 트랜스젠더가 아니고, 동성애자가 아닌 백인 남성으로서 저는 이런 이점을 가지지 않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유익을 ADA 덕분에 누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ADA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회의 평등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미국에서 모든 이가 경제적 삶에서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경쟁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직장에 들어갈 때 교육을 받을 때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 때 누군가가 가지는 이점이 다른 이에게는 차별이 되고 맙니다. 그런 차별이 진짜 문제이고 ADA가 생겨난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저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고 석박사 학위도 있습니다. 제가 만약 지금 가진 다른 이점들이 없었다면 문제들이 지금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DA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을 결코 일반인과 똑같이 대우해줄 수 없었을 것이고 사회구조적인 신체장애인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ADA는 장애인의 경제능력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장애인들이 극단적인 빈곤 가운데 살아갑니다. 장애 이외에도 그들이 경쟁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정말 많기 때문입니다. 이 측면은 장애인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고안된 법적 체계에서 다루지 않은 다른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장애인들은 이런 맥락에서 그 이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직업 재활 시스템이 있다고 칩시다. 저는 직업 재활 시스템으로부터 많은 유익을 입어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차도 샀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직업재활 시스템은 제가 차를 밖으로 몰고 나가는 건 도울 수 있었던거고 제가 차를 타고 직장에 가고 학교에 가고 할 수 있다면 그건 큰 유익인거죠 그렇죠? 그렇지만 내가 그 차를 살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뭐였을까요? 제가 차를 몰수 있었기 때문일가요? 사실 그런 차를 다수의 장애인들은 몰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아직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아니면 재활 센터 상담사가 저를 두고 직업교육울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제가 가진 이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 제 가족의 지원과 제가 백인이고 남성이라는 점 덕분에 재활 센터 상담사가 "당신은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돈을 당신이 운전을 하는데에만 온통 투자하지는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투자한 돈을 다시 회수할 수 있게 만든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ADA가 언급하지 않은 큰 문제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익을 회수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을 돕고자 만들어진 이 시스템 내에서 어떤 사람은 이익을얻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제, 제 전문 영역인 생명 윤리의 측면에서 한 번 말해 보겠습니다. 분명히 ADA는 이미 많은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ADA로 많은 도움을 줄 수가 없는 영역도 있습니다. 저는 긍정적인 측면부터 말해보겠습니다. 저는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점을 짚어볼건데요 ADA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의료 보험을 통해 의료비를 낮게 책정해주고 식사를 배급해주는 일들일 겁니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논쟁이 크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자원의 부족같은 문제 때문입니다.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적게 공급을 하고 있는거죠. 그래서 의료보험의 대상을 더 확대해서 여러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문제를 의논하고 있으며, 그러나 의료보험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지 않고서 이 문제는 해결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사람들은 필요로 하는 것보다 적게 벌기 때문입니다. 원하면 예산을 한 번 편성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지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오레곤 주는 인구가 다른 주에 비해 적으니 이런 일을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ADA가 노력을 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제가 역사가가 아니라 정확히 언제쯤 가능한지는 모르겠네요. 어쨋든 오레곤주는 공식적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료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하려고 했을 때 의료보험을 어떤 질병에 적용을 하고 어떤 질병에 적용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문제가 부상했습니다. 그들이 정말 이 일을 하려고 했을 때 다수의 장애인들이 의료 보험 체계에서 아무런 혜택도 얻지를 못하는 결과에 직면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의료보험의 범위를 정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레곤주에 소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는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의료보험체계로 아무런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할 수는 없겠죠. "장애인을 돕는다고 해서 정부로 다시 돈이 더 많이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요. 그들이 여전히 장애인이기 때문에 결국 건강해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이런 치료에서 선택권을 주지 않게 되는 거죠." 맞죠? 이런 이유 때문에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ADA가 장애인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최근에, 우리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라는 문제에 직면했고 그 때문에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미국이 제정한 "긴급 보건 조약"에 대한 건데요 국가가 응급환자들을 치료할 더 많은 침대와 산소 호흡기 같은게 필요해서 의료 시스템 상 만들어진 법입니다. 현재로서 미국은 침대나 산소호흡기같은 걸 더 많이 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한테 산소호흡기가 더 많이 필요한지 알아내야 합니다. 누가 응급치료용 침상이 필요한지 등등도 알아야 합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여기서도 법은 장애인들에게 아주 불리하게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알라배마 주의 경우를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정부가 치료해주다 보면 지적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나 치매 환자의 경우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워싱턴 주의 경우에도 장애인에 대해서 상당히 차별적인 정책때문에 만약 장애를 가졌다면 국가에서 돈을 대서 치료를 해준 후에도 장애인은 결국 장애인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를 치료해줄 수는 있지만 장애인이 확진이 되면 치료를 해줄 수가 없다고 말하죠. 미국 전역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와 관련해서 장애인들에게 법은 여전히 매우 차별적입니다. 대응책으로 장애인을 옹호하는 집단에 속하는 어떤 사람들은 캘리포니아 장애인의 인권은 하나이며 각 주가 연방으로 자금을 대서 각 주로 하여금 보호와 옹호를 하게 하고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비영리 법률 회사가 미국의 여러 주와 병원 시스템에 소송을 제기하게 해서 연방 정부로 하여금 치료에 필요한 지침을 제공하게 하고 필요한 치료 자원과 법을 모두 제공하게 하면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 상황이 장애인을 두고 치료로부터 어떤 이익을 입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리기가 정말로 쉬운 위급 상황이라면 장애인은 산소호흡기나 강력한 치료 환경에 놓여있더라도 바이러스에서 생존할 확률이 아주 아주 적은 사람이라도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왜냐하면 휠체어나 옷입고 목욕하는 걸 돕는 보조 기구들만을 배급해야 하는게 아니라 법에 따라서 그것 말고도 정말 많은 일을 의료진이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프로토콜이 바뀐다면 정말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코로나 치료를 받고 사람들이 살아나든 살아나지 못하든 그런 이유랑 상관없이 사람들을 돕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지적장애를 가졌던 가지지 않았든 그것과 상관없이 몸을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는 사람을 그냥 붙여준다면 말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결국 사망을 할거라면 치료를 해주지 않고 생존을 할 수 있다면 치료를 해주는 정책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미국 장애인법에 근거해서 이런 차별을 불법으로 정하였습니다. 이건 정말 중요합니다. 이런 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건 좋은 소식입니다. ADA는 이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들이 한 일은 이것 만이 아닙니다. 제가 몸담은 생명윤리학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이 있고, 우리는 ADA가 이야기하지 않은 방면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정의하고 풀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아동이 태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된 여러 과학 기술을 두고 논란이 존재합니다. 지적 장애와 다운 증후군, 저같은 왜소증, 유전적인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거죠. 우리가 하는 연구의 목표는 이런 유전적 장애를 시험하고 그런 어린이가 태어나는 것을 막는 건데. 이런 일은 선택적 낙태, 선택적 임신 같은 기술로 배아를 실험해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를 정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크리스퍼(CRISPR)라는 기술을 이용하면 특정한 배아를 선택하지 않고 배아 자체를 변형할 수 있습니다. 종종 유전자 조작 또는 유전자공학이라고 불리 겁니다. 그리고 아직 이건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장애를 막기 위한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이 기술은 물론 여러 장애인들을 불편하게 하기는 합니다. 이런 메세지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필요없어요."라고 말입니다. 맞나요?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 필요없어요." 그래서 이 기술은 크게 보았을 때 장애인들에게 낙인을 찍는 거랑 다르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질을 두고 "장애가 있으니까 불쌍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은 아예 태어나게도 하지 않는겁니다."라고 느껴질겁니다. 오늘날 이건 진짜 문제이긴 합니다. 재상산에서의 자유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다투게 될 문제니까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문제이고 삶이나 기타 여러 가지를 선택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와 장애인 윤리학자 들 사이에서 상당한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ADA는 이런 문제를 다루고자 고안된 법은 아닙니다. 이건 사람에 대한 차별이 아니고 오히려 개인적 선택을 이끄는 믿음과 장애, 태도와 관련된 문제니까요. 그래서 이걸 정책적인 문제라고 치부하면 정말 어렵습니다. 아시겠지만 사람들은 여성과 가족들이 그들의 후대를 정하는 결정에서 아주 업격하거나 자유를 제하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좋은 믿음, 진실한 믿음을 길러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좋은 태도를 가지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다양성을 만들어나가고 여러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저같은 사람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를 다루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게 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요. 아시다시피 장애는 불쌍한 사람들이 겪은 끔찍한 낙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추측을 하지 않고, 쉽게 기술을 평가하지 않으며 결정을 신중하게 내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우월한지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만약 한 가지 변화하고 싶은 점을 꼽으라고 하면, 장애인들의 접근성이 더 좋아졌으면 하고 삶을 더 영화롭게 만드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이 사라졌으면 하고,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태어날 대 의사가 제 몸을 본 다음에 저같은 왜소증 아기는 본적이 없고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는지 제 부모님께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얘기도 못하고 학교도 못갈 겁니다." 와 같은 얘기를 했다네요. "국가 기관에 아이를 맡기고 그냥 삶을 사시는게 나을 거에요. 애는 잊어버리세요." 저희 부모님은 그 말을 듣고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집으로 데려와서 다른 아이들처럼 저를 잘 키워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의사의 말대로 태어나자 마자 기관에 맡겨졌다면 제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기관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있는지도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기 전에 텍사스 주에 위치한 보호 기관에서 변호사로 일했을 때 그런 기관에 대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국가가 살아있는 기관을 지지해준다"고요 이 말은 지적장애와 다양한 종류의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그들이 가두어 놓은 데 대한 완곡어법이었습니다. 그 기관이 바로 그 당시 의사가 저희 부모님에게 저를 집어 넣으라고 한 곳이었습니다. 이건 진짜 좋은 일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기관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가두어 두는 사설 병원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병원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실제로 삶을 사는 사람아 아니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런 시설에 가두어 두는 일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언제 일어나서 언제 침대로 가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입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텍사스에서 국가 기관에 장애인을 옹호하기 위해서 갔을 때 저는 제 고객의 식사 습관에 대해서 논의하는 회의 자리에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그 장애인이 밥을 먹을 때 내내 한 입 먹을 때마다 억지로 물을 먹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습니다. 그들은 장애인의 삶에서 가장 작은 하나까지도 일일히 통제하고 가장 괴로운 방식으로 살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그런 환경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다른 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일히 간섭을 하는 곳에서 결코 마음편히 밥을 먹을 수는 없을 겁니다. 삶에서 기본적인 결정조차도 통제하지 못하는 곳은 문제가 되며, 다수의 장애인들이 ADA가 제정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한테 마법 지팡이가 있다면 저는 이 문제를 바꾸었을 겁니다. 정말 돕고자 한다면 그 장애인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고 그런 식으로 통제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매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일히 말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결정을 내릴 수 없고 자신의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ADA가 제정되었으나 다수의 장애인들이 아직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교육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 운동의 범위 내에서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조금 더 대화해야 합니다. 제한된 경험에서 넘어서서 장애인 문제를 깨달아야 합니다. 장애 때문에 사람들에게 닥친 여러 문제가 그들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장애인의 경험이 다수의 경험과 같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우리가 힘들어하고 상처받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합니다. 장애인 차별 문제 중에서도 이 문제가 다른 사람의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이 알면 알수록 한 발자국 나아가기가 더 쉬워집니다. 그리고 나서 서로에게서 알게된 점을 토대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전략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요. 청각장애인 지역사회에서 알게 된 전략이 왜소증 장애인 지역사회에서 정말 도움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다른 정치적 전략으로부터 다른사람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찾아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힘들게 찾은 해결책들을 직접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배우고 그 뒤에 정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효과적으로 장애인들을 옹호하고 함께 싸워 나가는게 중요합니다. 맞죠?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이 가진 어떤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보여주면 그들 또한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져다 줄 겁니다. 그리고 연대함으로써 문제가 더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을 힘들게 하는 다른 억압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제가 여러분에게 추천드리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서 차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