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VTT 00:00:00.000 --> 00:00:04.863 < 영어불교대학 I > 00:00:04.863 --> 00:00:09.880 < '공하다'란 무슨 의미인가요? > 00:00:09.880 --> 00:00:12.658 (질문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00:00:12.658 --> 00:00:17.128 이렇게 많은 분이 계신 자리에서 질문하려니 조금 긴장이 됩니다 00:00:17.128 --> 00:00:20.048 그러니 조금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00:00:20.048 --> 00:00:24.520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공(空)’의 개념에 관한 것입니다 00:00:24.520 --> 00:00:29.902 '공'은 스님의 법문, 영상, 교재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고 00:00:29.902 --> 00:00:36.364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같은 전통적인 경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00:00:36.364 --> 00:00:44.429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의 의미를 접할 때마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고 00:00:44.429 --> 00:00:49.556 때로는 약간 의욕이 꺾이고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00:00:49.556 --> 00:00:55.095 제가 공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직 너무 얕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00:00:55.095 --> 00:01:04.414 저는 공을 '무상'과 '연기'로 인해 결국 '모든 것이 비어 있다'는 의미로 00:01:04.414 --> 00:01:07.074 이해하고 있습니다 00:01:07.074 --> 00:01:11.694 그래서 제 고민은 제 삶에서 중요한 것들, 예를 들어 00:01:11.694 --> 00:01:17.294 가족 관계나 중요하게 여기는 목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00:01:17.294 --> 00:01:26.729 이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00:01:26.729 --> 00:01:37.104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질문입니다 00:01:37.104 --> 00:01:43.971 (스님) '공'이라는 말은 일단 중국 문자고요 00:01:43.971 --> 00:01:59.979 그것은 '빌 공(空)'이라 해서 '비었다' 하는 의미의 글자입니다 00:01:59.979 --> 00:02:05.159 그러나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어떤 문자라는 것은 00:02:05.159 --> 00:02:13.639 그 앞뒤 문맥에 따라서 한 가지 뜻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00:02:13.639 --> 00:02:29.007 열 가지, 스무 가지의 뜻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00:02:29.007 --> 00:02:39.483 '하나의 글자나 말이 한 가지만 의미한다' 하면 이것은 '색(色)'이라고 할 수 있고요 00:02:39.483 --> 00:02:46.904 그것이 앞뒤 문맥에 따라서 이리저리 의미를 달리한다면 00:02:46.904 --> 00:03:07.122 그것은 '공(空)'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0:03:07.122 --> 00:03:12.642 그러니까 '공'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00:03:12.642 --> 00:03:17.037 '여러 의미가 있는 중에 그중에 어느 한 개로 정해지지 않는다' 00:03:17.037 --> 00:03:37.222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00:03:37.222 --> 00:03:43.908 가령 질문자를 보고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00:03:43.908 --> 00:04:00.298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00:04:00.298 --> 00:04:03.693 그러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는 00:04:03.693 --> 00:04:16.893 질문자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어떤 요소가 있다는 뜻입니다 00:04:16.893 --> 00:04:31.040 반면에 '나쁜 사람'이라고 할 때는 나쁘다고 할 어떤 요소가 있다는 거예요 00:04:31.040 --> 00:04:36.758 그것이 좋은 요소든 나쁜 요소든 그런 요소가 있다고 하는 것이 00:04:36.758 --> 00:04:55.744 '공(空)'의 반대되는 언어인 '색(色)'이라는 겁니다 00:04:55.744 --> 00:04:59.927 그런데 '공'이라는 것은 00:04:59.927 --> 00:05:06.930 이 사람이 보기에 좋아 보이고 저 사람이 보기에 나쁘게 보일 뿐이지 00:05:06.930 --> 00:05:27.665 그 사람 자체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00:05:27.665 --> 00:05:28.965 즉 이 사람에게 00:05:28.965 --> 00:05:35.935 어떤 좋은 요소, 나쁜 요소라는 게 있어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고 00:05:35.935 --> 00:05:37.184 이 사람에게는 00:05:37.184 --> 00:05:42.364 좋은 요소라고 할 것도 없고 나쁜 요소라고 할 것도 없다 00:05:42.364 --> 00:05:44.944 다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00:05:44.944 --> 00:06:13.229 자기식으로 이것은 좋아 보이고 저것은 나쁘게 보일 뿐이라는 거예요 00:06:13.229 --> 00:06:14.784 그럴 때 어떤 사람이 00:06:14.784 --> 00:06:17.477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말하든 혹은 "나쁜 사람이다" 말하든 00:06:17.477 --> 00:06:21.342 그 사람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고 '공이다' 00:06:21.342 --> 00:06:34.999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00:06:34.999 --> 00:06:38.444 즉 '공하다(empty)' 할 때는 '아무것도 없다'가 아니라 00:06:38.444 --> 00:07:05.380 '좋다, 나쁘다' 하는 요소가 없다는 겁니다 좋은 요소도, 나쁜 요소도 없다는 뜻입니다 00:07:05.380 --> 00:07:09.620 여기 어떤 물질이 있습니다 00:07:09.620 --> 00:07:16.881 이 물질을 조금 먹고 어떤 사람이 병이 나았어요 00:07:16.881 --> 00:07:31.167 그래서 이 사람이 "이것은 좋은 약이다"라고 했습니다 00:07:31.167 --> 00:07:40.784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먹고 오히려 몸이 더 아팠습니다 00:07:40.784 --> 00:07:47.962 그래서 그는 "그것은 독이다"라고 했습니다 00:07:47.962 --> 00:07:56.923 그러면 이 물질은 약이냐, 독이냐? 하는 거예요 00:07:56.923 --> 00:08:00.314 세상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00:08:00.314 --> 00:08:03.575 첫째, '약이다' 00:08:03.575 --> 00:08:06.755 둘째, '독이다' 00:08:06.755 --> 00:08:16.620 셋째, '약성도 있고 독성도 있다' 00:08:16.620 --> 00:08:26.006 그러나 이 물질은 사실은 '공'이다 00:08:26.006 --> 00:08:36.448 그것은 약성도 없고 독성도 없다는 뜻입니다 00:08:36.448 --> 00:08:43.670 그 말은 그것은 그냥 한 물질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00:08:43.670 --> 00:08:47.541 그것이 어떤 데에 작용하느냐에 따라서 약성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00:08:47.541 --> 00:09:03.003 독성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는 겁니다 00:09:03.003 --> 00:09:05.250 그럴 때 이것을 '공'이라고 합니다 00:09:05.250 --> 00:09:08.363 '공'이라는 것은 약성도 없고 독성도 없다 할 때 '공'이고 00:09:08.363 --> 00:09:24.357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할 때 '공'이라 합니다 00:09:24.357 --> 00:09:28.928 이 세상의 모든 물질 모든 존재, 모든 것은 00:09:28.928 --> 00:09:33.409 그것이 물질적이든 생물학적이든 정신적이든 00:09:33.409 --> 00:09:54.000 '그냥 그것일 뿐이다' '다만 그것일 뿐이다' 00:09:54.000 --> 00:10:08.261 그래서 '진실은 공'이라는 거예요 즉 '다만 그것일 뿐'이라는 거예요 00:10:08.261 --> 00:10:12.435 그러나 그것이 인연을 따라 즉 시간과 공간의 조건에 따라 00:10:12.435 --> 00:10:15.632 어떤 때는, 이 사람에게는 좋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00:10:15.632 --> 00:10:18.680 저 사람에게는 나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00:10:18.680 --> 00:10:24.019 어떤 때는 약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독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00:10:24.019 --> 00:10:27.839 '공'이기 때문에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고 00:10:27.839 --> 00:10:57.209 '공'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거예요 00:10:57.209 --> 00:11:03.195 그래서 '공'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라는 존재의 본질 00:11:03.195 --> 00:11:07.692 '색'이라는 것은 그것이 인연을 따라서 우리에게 드러났을 때 00:11:07.692 --> 00:11:29.379 이렇게도 드러나고 저렇게도 드러나는 것을 '색'이라고 한다 00:11:29.379 --> 00:11:43.719 그러니 모든 존재의 본질이 '공'인 줄 알면 괴로울 일이 없다는 거예요 00:11:43.719 --> 00:11:51.868 즉 그 사람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라는 거예요 00:11:51.868 --> 00:11:54.998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다'가 아니라 00:11:54.998 --> 00:11:59.811 이 시간과 공간의 조건에서는 때로는 좋게, 때로는 나쁘게 00:11:59.811 --> 00:12:20.945 나를 기준으로 해서 나타날 수는 있다는 거예요 00:12:20.945 --> 00:12:29.571 (스님) 질문자의 눈을 보니까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지 않네요 00:12:29.571 --> 00:12:35.634 '선과 악이 공하다'는 스님 말씀을 생각 중입니다 00:12:35.634 --> 00:12:43.181 그러면서 역사적으로 많은 고통을 초래한 독재자들을 안 떠올릴 수 없습니다 00:12:43.181 --> 00:12:45.299 동시에 한편으로는 00:12:45.299 --> 00:12:59.510 '그 사람들은 계율을 어겼지' 하면서 스스로 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00:12:59.510 --> 00:13:18.371 (스님) '계율 마저도 공하다' 이렇게 봐야 합니다 00:13:18.371 --> 00:13:22.831 (스님 웃음) 00:13:22.831 --> 00:13:29.291 (질문자) '계율이 공하다'는 말씀이 저는 아직도 혼란스럽습니다 00:13:29.291 --> 00:13:47.332 우리가 속한 시대와 사회에 따라 계율이 달라진다는 의미인가요? 00:13:47.332 --> 00:13:53.925 (스님) 어떤 계율이든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00:13:53.925 --> 00:13:58.349 '항상 객관적인 진리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00:13:58.349 --> 00:14:17.069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게 위험해집니다 00:14:17.069 --> 00:14:20.919 그래서 붓다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조건 속에서 늘 00:14:20.919 --> 00:14:25.529 나침반을 놓으면 자석이 흔들흔들하다가 딱! 북쪽을 가리키듯이 00:14:25.529 --> 00:14:31.047 시간과 공간의 조건 속에서 '바른길'이라는 것이 정해진다 00:14:31.047 --> 00:14:35.193 바른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00:14:35.193 --> 00:14:41.085 이것을 우리가 '중도'라고 하잖아요 00:14:41.085 --> 00:15:21.367 테라밧다에서 '중도'라고 하면 그것이 마하야나에서는 '공'이 되는 거예요 00:15:21.367 --> 00:15:26.751 그러니까 테라밧다 불교에서 '이것이 진리다!' 하는 00:15:26.751 --> 00:15:33.306 형식주의를 너무 강조했기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그것도 공하다' 00:15:33.306 --> 00:16:05.401 하는 반발, 비판적으로 나온 말이 '공'이라는 단어입니다 00:16:05.401 --> 00:16:09.596 처음에 바로 '공'이라는 단어가 안 나오고 처음에 나온 것은 00:16:09.596 --> 00:16:13.589 테라밧다에서 '법'이다'라고 하니까 00:16:13.589 --> 00:16:19.212 그게 너무 형식주의가 되고 절대화되는 것을 반대해서 00:16:19.212 --> 00:16:22.436 '정해진 법이 없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00:16:22.436 --> 00:16:26.161 '법이다' 하니까 '법이라고 정해진 게 없다' 00:16:26.161 --> 00:16:49.361 이것이 나중에 '공이다' 하고 표현이 바뀌어 나갔습니다 00:16:49.361 --> 00:16:51.686 (스님) 그러니 '진리다' 하면 00:16:51.686 --> 00:17:19.255 '진리라고 할만한 정해진 게 없다' '공이다' 이렇게 된 거에요 00:17:19.255 --> 00:17:23.784 (스님) 그러니까 우리가 이 '용어' 때문에 '공간적으로 아무것도 없고' 00:17:23.784 --> 00:17:54.471 '텅 비어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아주 일부분이에요 00:17:54.471 --> 00:18:03.408 그러니까 우리는 대부분 상대에게 집착을 합니다 00:18:03.408 --> 00:18:18.681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면 그냥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해요 00:18:18.681 --> 00:18:25.465 그런데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00:18:25.465 --> 00:18:36.315 그게 너무 지나치면 "알았다!" 하고 포기하거나 내버려둡니다 00:18:36.315 --> 00:18:43.080 이것이 '무관심'이에요 00:18:43.080 --> 00:19:00.422 그러나 집착을 놓게 되면 즉 '공'인 줄 알면 집착할 바가 없는 거예요 00:19:00.422 --> 00:19:07.174 그러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줍니다 00:19:07.174 --> 00:19:16.587 도와달라면 도와주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면 돕지 않고 00:19:16.587 --> 00:19:28.651 그러니까 집착도 하지 않고 무관심하지도 않습니다